연왕 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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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 [편집]
2. 생애 [편집]
연왕 쾌 3년(기원전 318년), 연왕 쾌는 초(楚)나라, 한(韓)나라, 위(魏)나라, 조(趙)나라와 연합해 진(秦)나라를 쳐서 승리했다. 같은 해 연왕 쾌는 요 임금과 순 임금이 선양한 일을 사모하여, 그를 따른 다는 이유로 녹모수의 말에 따라 상국 자지(子之)에게 선양해 자지가 연왕이 되고 연왕 쾌는 신하가 되었다. 당연히 연왕 쾌가 죽은 뒤 그 뒤를 이어야 했던 태자 희평(姬平)이 반발해 연왕이 된 자지와 싸우니 나라는 혼란에 빠졌다. 이 틈을 타 제 선왕이 연나라를 쳤다.[2] 이 혼란 중에 연왕 쾌는 자살하였고, 연왕 자지는 거열형에 처해졌고 젓갈로 담겼다. 그리고 연왕 쾌의 태자인 희평 또한 죽었다.[3] 이때 한나라에 살던 서자 희직(姬職)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연 소왕(燕昭王)이다.[4]
[1] 죽서기년에 나오는 기록. 사마천(司馬遷)의 사기(史記)에서는 제민왕(齊湣王) 때의 일로 나온다.[2] 맹자(孟子)가 도탄에 빠진 연나라 백성을 구하기 위해 출전하라고 했다는 말이 있는데, 제 선왕이 연나라를 약탈하여 맹자가 실망하고 떠났다고 한다.[3] 일설에는 희평이 연왕 자지와 싸우다가 죽었다고도 한다.[4] 사기와 열국지에서는 희평이 연소왕이 되었다고 나온다. 자세한 사항은 연소왕 문서 참조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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